1의 순간

혹시 자주 꾸는 악몽이 있으세요? 저는 운전면허를 갖게 된 서른 두 살 이전에는 운전하는 악몽을 꿨습니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데 운전을 해야 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거죠. 신기하게도 면허를 딴 뒤에는 안 꾸게 됐는데요. 한 2년 전부터 새롭게 꾸게 된 악몽이 있습니다.

계뿌클 앱 아무도 안 쓰는 꿈

악몽 꾸는 이대호

계단뿌셔클럽은 사실 위험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동약자 관점에서 장소 탐색 앱 만들고, 서울 주요 상권 편의시설 데이터를 거의 다 모으면 쓸모 있을 것이다’가 저희 전략 가설인데요. 이 가설 검증하려면 10만 개 접근성 데이터를 모아야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는데 아무도 안 쓸 수도 있죠. 완벽한 기획으로 만든 서비스가 누구에게도 안 쓰이는 일은 아주 아주 흔하거든요.

최초에는 실패로 판명될 경우 ‘졌지만 잘 싸웠습니다!’라고 선언하고 다른 시도하면 되지 생각했는데요. 안 되겠더라고요. 문제해결에 동참한 사람이 늘수록 착잡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이었지만 이제는 연간 2,500명 넘는 사람이 활동에 참여합니다. 누적 인원은 5천 명에 가깝습니다. 이제 한 시즌 100명 넘는 크루들은 정말 진심입니다. 시즌마다 수백 명의 게스트를 환대하고, 친구도 많이 초대합니다. 모두가 오직 문제가 해결 되길 바라며 마음과 시간을 씁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진심을 쏟으며 열심히 했는데, 최초에 세운 가설이 틀려 실패한다면? 다단계 폰지사기를 벌인 것과 같잖아요. 게다가 저는 앞장서서 왜 이 활동이 필요하고 어떤 결과가 있을지 설명했으니 ‘수괴’입니다. 그런 생각하다보니 악몽을 꿉니다. 기대에 부푼 5천 명 앞에서 “안타깝지만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꿈입니다.

1의 순간

흑흑... 다행이야...

계뿌클 앱은 0의 상태였습니다. 크러셔 클럽과 파트너십이 성장하면서 정보를 등록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탐색 기능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데이터가 부족했으니까요. 실망하실까봐 ‘어디 갈 때 한 번 써보시라’는 말도 얼마 전까지 안 했는데요. 여름 무렵 낯선 DM이 오기 시작했어요.

전에 없던 앱 사용에 대한 불만, 건의 의견들이었어요.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다, 앱을 어디에서 사용했는데 이런 정보가 잘못 들어있는 것 같더라, 이 지역의 데이터는 언제 업데이트 할 계획이냐 등등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반갑고 감격스러운 불만이었습니다. 불편하니 고쳐달라는 건 앱을 (얼마만큼인진 모르지만)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정확히 확인해봤습니다. 며칠 전 측정해보니 월 1회 이상 앱을 쓰는 휠체어 사용자(MAU)가 약 170명이나 됩니다!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실제로 얻는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까진 아직 모르지만 사용자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서울을 다 정복해도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4년 동안 5,000명이 11만 개 장소를 정복한 끝에 ‘쓸모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이것이 1의 순간, 액자에 보관하고 싶은 올해의 장면입니다.

문제해결에 합류해주세요

당신의 합류를 기다리는 동료들

지난 편지에 ‘어렵더라도 좋은 판단을 했으면 더 많은 사용자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하는 후회를 썼습니다. 후회도 진심이고, 1의 순간에 안도한 것도 진심입니다. 1의 순간은 너무 기쁘지만, 더 나은 판단을 했다면 1이 아니라 3, 5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즉, 부당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더 즐겁고 편리한 삶을 빨리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해야 하는 어렵지만 좋은 판단은 여러분께 ‘합류’를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계단뿌셔클럽의 부스터즈(후원자)가 되어 100의 순간을 함께 만들어주세요. 1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팀이 지속되어야 하고, 팀의 지속을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합니다. 5명의 팀원 중 두 명분 인건비(중 기본급)에 해당하는 월 430만원을 목표로 정기후원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요. 320만 원(74%)을 달성해 100만 원가량이 남았습니다.

계뿌클이 100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실현되는 것은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타인의 고통을 모른척하지 않는 세상’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친구가 겪는 어려움을 모른 척하기가 머쓱해서 저는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평생 타인의 고통을 잘도 외면하며 살아왔지만, 저도 한 번쯤은 함께 맞서보고 싶었고, 해결하고 싶었거든요.

그것을 우정이라고 부르며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 둘, 5천 명까지 늘어나 1의 순간이 왔습니다. 누군가는 타인이 겪는 부당한 고통에 같이 맞서려고, 누군가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크루로, 게스트로, 부스터즈(후원자)로 이 모험에 동참합니다. 따라서 이 모험의 끝에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세상, 즉 타인이 나의 어려움을 모른척하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후원자로 합류해 이 무모하지만 설레는 모험에 함께해주세요.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가 직접 만든 더 나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갑시다. 함께 하면 해낼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이대호와 친구들의 모험을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저는 격주로 편지를 쓰지 않았을 거예요. 그랬다면 성찰하지 않았을 것이고, 성찰하지 않았다면 1의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1의 순간은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2025년, 1의 순간을 함께 만들어주신 여러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