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열린 꾸독자 사은행사 몇 명 왔을까?
비밀편지 2025
연말에 작년 한 해 편지를 꾸준히 읽어주신 분(꾸독자)들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은혜를 갚고 싶은데, 혹시 시간 되시면 사은행사에 와주십사 하고요. 아무도 안 오실까봐 걱정했는데요. 다행히 여섯 분의 꾸독자를 모시고 은혜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행사를 치르며 갈고 닦은 몇 가지 기술을 사용했는데요.
기술 1: 우아한 공간과 맛있는 간식

제가 프로그램을 아무리 잘 준비한들, 근사한 공간과 맛있는 음식을 이길 수 있을까요? 친구의 도움으로 홍대 근처에 멋진 공간을 빌렸습니다. 통창으로 햇살이 적당히 들어오고, 창 밖에는 (옆 집에서 심어놓은) 날렵하게 우람한 소나무가 보이는 곳입니다. 다행히 역에서도 5분 거리입니다.
간식은 비스킷 슈, 생크림 스콘이 맛있다는 빵집에서 사왔습니다. 모르는 사람들 끼리 만날 때 간식 준비의 핵심은 한 입 거리로 잘라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덩어리를 혼자 먹을 수도 없고, 나서서 자르긴 민망해서 안 건드리게 되더라고요. 모양만 보여드리고 한 입 크기로 잘랐습니다.
사실, 혼자 준비하면 시간이 부족해 엉성해질 뻔했는데요. 일손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신 김 선생님이 30분이나 일찍 와서 같이 준비해주셨어요. 심지어 여자친구랑 먹다 남은 내추럴 와인도 가져오셨더라고요. 덕분에 ‘완벽한 세팅’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기술 2: 퀴즈로 아이스 브레이킹

이날의 행사 ‘비밀편지 2025’는 세 시간짜리였습니다. 세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면 마음이 편해야 하고, 마음이 편하려면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어색한 느낌을 치워워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잘 해야 하는데요. 뭘 할까 고민하다가 ‘퀴즈 게임’을 했습니다.
꾸독자의 공통점은 작년 제가 쓴 28편의 편지를 대부분 읽으셨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편지 내용을 시험 범위로 삼는 10개의 퀴즈를 냈습니다. 하나도 유익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엽적인 것들로 문제를 냈더니, 다들 엄청 열심히 푸시더라고요. 호호호.
그래도 꾸독자는 꾸독자구나 싶었던 것이, ‘이걸 어떻게 기억하지?’ 싶었던 것들을 맞추시기도 하더라고요! 위 문제의 정답이 몇 번인지 혹시 아시나요? 정답은 2번입니다. 저도 헷갈리는데 정확히 기억하고 맞추신 분이 계셔서 너무 신기했습니다. 매우 가소로운 퀴즈임에도 불구하고 열내며 퀴즈를 풀고 나니, 다들 표정이 한껏 편해지신 것 같았습니다.
기술 3: 맞춤형 선물하기

퀴즈도 풀고, 작년에 편지에는 쓰지 못 했던 비밀 이야기도 두 가지 들려드리고, 마지막 순서는 ‘모험가의 대화’였습니다. 모험가의 대화는 각자 올해 꼭 해보고 싶은 경험,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말하는 시간입니다. 즉, 2026년 나의 모험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인데요. 이 시간을 준비한 이유는 꾸독자 분들께 맞춤형으로 응원이 될만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합니다. 이렇게 생긴 종이에 각자 생각하는 바를 쓰고 돌아가면서 얘기합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모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용기, 끈기, 희망 중에 무엇인지 말해야 하는데요. 용기, 끈기, 희망에 해당하는 선물을 2개씩 준비했습니다. 선물은 제게 용기, 끈기, 희망을 주었던 책입니다. 좋아하는 문장에 미리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책 속지에는 이 책을 고른 이유도 짧게 적었습니다.
근데, 연초라 그런지 끈기를 고르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렇지만 ‘끈기’ 책은 두 권뿐입니다. 퀴즈 많이 맞춘 사람부터 기회를 드렸는데, 나중에 선택하신 분들은 ‘끈기’를 고를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게 아쉬울 것 같아서 ‘응원’ 카드를 준비했습니다. 이야기 들어 봤을 때, ‘저 사람에게 끈기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양보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두 분이 응원 카드를 사용하셔서 해피 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사은행사라는 말 보통 거짓말이잖아요. ‘사은’은 ‘은혜에 감사하다’라는 뜻입니다. 백화점 같은 데서 하는 보통의 사은행사는 감사의 뜻보다는 할인 혜택을 미끼로 수익을 더 내는 것이 목적인 행사입니다. 물론, 고객들도 다 압니다. 그래서 ‘사은행사’란 말은 무죄로 추정되는 거짓말입니다.
저도 백화점처럼 ‘진짜 목적’을 숨기고 무언가를 건넬 때도 많은 것 같아요. 고맙다는 말에 ‘정기후원해주세요’를 감추기도 하고, 미안하다는 말에 다음에 또 참여해달라는 마음을 숨기기도 합니다. 서글프지만, 시커먼 마음을 품는 게 제 책임을 다하는 최선의 행위인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은혜에 감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진짜 목적’ 같은 것 없이 이 편지를 읽고 계시잖아요. 그 덕에 저는 큰 힘을 얻었고요. 모든 분들께 할 수는 없지만, 오신 분들께라도 순진한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참석자 J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다’고 해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제 목표가 바로 그것이었거든요. 올해 연말에도 아마 비밀편지 2026을 할 텐데요. 혹시 시간 되시면 놀러오세요.
올해 모험도 잘 해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