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독감, 제가 한 번 걸려보았는데요

혹시, 아래 문장들 중에 동의하시는 것이 있나요?

  • 감기 걸렸을 때 푹 쉬면 되지 나약하게 병원 갈 필요 없다
  • 가소로운 바이러스 자식들, 나는 나의 면역력을 믿는다!
  • no pain, no gain, 나는 자연치유를 통해 슈퍼면역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오늘 편지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두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인데요.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잘못된 판단으로 어리석게 고생을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거든요!

감기로 왜 병원에 가?🙂

독감 걸린 날 아침 운동 간 (불행해보이는) 이대호

저는 1년에 한 번은 몸살감기에 걸립니다. 보통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걸리곤 합니다. 몸살감기에 걸리면 한 이틀 쯤 몸져 눕습니다. 감기는 약 먹는다고 더 빨리 낫지 않는다는 상식, 건강보험 재정이 곧 적자로 전환된다는 우려로 굳이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2~3일 앓고 나면 차차 회복이 되고, 늦어도 4일째에는 말끔하게 완쾌합니다.

올 겨울은 몸살 없이 넘어가는 것 같더니, 며칠 전 신호가 왔습니다. 목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띵하고 조금 추웠습니다. 사실 그때는 몸살이라고 생각을 못 했습니다. 잠을 설쳐서 띵한 줄 알았고, 실제로 날씨가 추워서 추운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운동도 다녀왔는데요. 운동 다녀와 씻고 나니,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후가 되니 몸살이 확실했습니다. 그렇지만 마감이 닥친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휴가는 무리였습니다. 편의점에서 판콜을 사다가 먹으면서 목요일, 금요일, 예정대로 일을 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증상이 점점 심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동안의 패턴과 달랐습니다. 보통의 감기라면 호전될 타이밍인데 그렇지 않았고, 걸린 시기도 환절기가 아니라 한겨울이었으니까요.

그때 병원에 갔어야 했습니다.

독감은 ‘독한 감기’가 아니다

깐부치킨 신나게 먹던 중 깜짝 도착한 (입맛 없을까봐 걱정되어 보냈다는) 여자친구의 전복죽

고열로 인한 악몽에 악몽에 시달리다 깬 토요일 아침, 상태가 전날보다 더 나빴습니다! 열이 나고, 오한이 나고, 콧물이 조금 흐르고, 근육통이 심하고, 가래가 끼고 기침이 나서 말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이유가 뭘까요? 혹시 감기가 아닌 걸까요? 급한대로 Gemni에 물었습니다.

저의 증상을 자세하게 설명했더니, ‘독감’일 수도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뭐야, 그럼 감기가 맞다는 거잖아?’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독감’은 ‘감기’랑 다르다는 거에요. 두 질병은 원인과 증상, 해결 방법이 모두 다르다는 겁니다. 감기는 잘 쉬면 되고 약을 먹지 않아도 되지만, 독감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면역력만으로 자연치유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독감과 감기 모두 ‘바이러스’가 원인입니다. 그렇지만 독감은 특정 몇 개 바이러스가 원인이고요. 감기는 엄청나게 다양한 바이러스로 감염됩니다. 증상도 독감이 훨씬 심합니다. 건강한 성인의 경우 감기에 걸려도 ‘고열’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고 해요. 제가 병원에 갔을 때 체온이 38도 정도였는데, 감기로는 이정도까지는 열이 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타미플루 수액 9만원

독감 투병의 동반자 '슬로 호시스'(Apple TV)

문제는 토요일이었다는 점입니다. 근데 토요일에도 하는 병원이 있더라고요. 네이버 지도로 찾아보니 근처에 오후 2시부터 진료하는 내과가 있습니다. 2시 5분에 도착했는데, 7명의 대기자가 있었어요. 면봉으로 코를 쑤시는 독감 검사를 먼저 받고, 한참 뒤에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B형 독감이고, 항바이러스제를 써야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먹는 약, 수액 주사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둘 다 ‘그 유명한’(이라고 덧붙이신) 타미플루라는 약인데, 먹는 약은 5일 동안 먹어야 하고요. 수액은 옆 방에서 30분 맞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효과는 수액이 압도적으로 빠른데, 주사로 맞는 건 비급여라서 90,000원이 듭니다. 돈이 좀 아깝지만, 잘못하면 월요일에 출근 못 하겠다 싶어 수액을 선택했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저는 그동안 감기랑 독감이 비슷한 거고, 약은 대증적 효과만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너무 먹으면 면역력이 약해진다고요. 다 잘못된 사실이었습니다. 독감은 치료가 필요하고, 쌩으로 버텨서 생기는 면역은 어차피 내년에 올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엔 무효하다고 합니다. 약없이 버텨서 얻을 수 있는 건 폐렴 같은 합병증밖에 없다고 하네요.

제가 얻은 교훈 요약입니다.

  • 열 나면 48시간 내에 병원 가세요. 48시간 내에 타미플루를 맞아야 가장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 3월까지 B형 독감 유행이니까 지금이라도 예방 접종 맞으세요. 귀찮지만,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못 하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입니다.
  • Apple TV 이용 이력이 없으면 7일 무료가 되는데 ‘슬로 호시스’라는 드라마 아주 재밌습니다. 무능력해서 밀려난 영국 첩보원들 이야기인데 무려 게리 올드먼 나옵니다.

그럼 저는 슬로 호시스를 마저 보러 이만… 콜록…
여러분의 병약한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