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진짜 열 받았던 일
“대호 님, 이 뉴스 보셨어요?”
룰루, 출근해서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동료가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습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전장연을 비판하며 시위 중단을 촉구했다는 기사였습니다. 피가 얼굴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전장연이 시위하는 이유와 제가 계뿌클을 하는 이유가 다르지 않고, 박홍근 장관은 제가 특히 싫어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격주로 쓰는 이 편지를, 오늘은 안 쓰고 누워서 뒹굴 거려도 되는데 당겨서 지금 쓰게 만들 만큼 말입니다.
싫어하는 이유
박홍근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4선 국회의원입니다. 경희대 총학생회장이었고,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시민단체(NGO)에서 일했고, 40대 초반이었던 2016년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생전에는 박원순계로 분류됐습니다.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으로 분류됩니다. 기획예산처의 장관으로 올해 3월 임명됐고, 나랏돈을 책임집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로 그를 싫어합니다. 일명 ‘타다금지법’을 발의해 2020년 통과시킨 장본인입니다. 이때 같이 일하던 동료 수십 명, 수천 명의 드라이버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당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러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 장본인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2년 뒤 원내대표로 선출되고 기자들이 묻자 잘못된 용어 선택이었다고 인정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 박홍근 장관이 수요일(19일) SNS에 글을 올렸습니다. “전장연에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의 정상적인 운행에 차질을 초래하여 시민들의 출근길 등 일상에 반복적으로 피해와 불편을 주는 시위를 더 이상 벌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민주당 소속 예산장관이 굳이 전장연을 꼬집어 비판할 필요가 있나 싶고, 솔직히 원래 싫은 사람이라 더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왜 갑자기 전장연을 비판했을까?
마음껏 미워하려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맥락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다소 뜬금 없이 박홍근 장관이 19일 아침에 전장연 비판 글을 올렸고, 바로 다음날인 20일 오후에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박 장관이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전장연은 21일, 22일 예정된 시위를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기획예산처가 무엇을 약속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노력해보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의 가설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약속대련’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약속대련’이란 갈등의 상대방끼리 물밑에서 협의를 해두고, 겉으로는 싸우고 부딪히는 것입니다. 주먹을 어디로 내지를지, 어떤 손으로 막을지 다 정해두고 대련을 한다는 뜻입니다.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서 쓰는 전략입니다. 국민을 의뢰인, 정치인을 대리인이라고 했을 때, 대리인들이 치열하게 싸우다 합의해야 의뢰인들이 그나마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약속대련을 의심하게 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 비판 글 올린 직후에 박 장관과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만났고
- 8월 마지막 주는 기획예산처가 내년도 예산을 최종 수정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고
- 민주당 출신 예산장관으로서 전장연의 요구를 반영하려면 전장연 반대편에 서는 척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 정황을 살펴 본 후 제가 세운 가설은 ‘박홍근 장관이 내년도 예산 편성에 전장연의 요구를 반영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요.
진짜인지 확인하는 방법
물론, 가설일 뿐입니다. 전혀 잘못 짚었는 지 모릅니다. 이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2027년 정부 예산이 통과되는 과정을 앞으로 5개월 동안 지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획예산처 장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타이밍은 두 번입니다.
첫 번째 타이밍은 9월 초입니다. 이때 정부가 국회에 2027년 예산안 ‘초안’을 보고합니다. 이 초안에 기획예산처의 의지가 담깁니다. 복지부, 국토부, 문화부 등의 정부 부처들은 각자 내년에 얼마 쓰겠다고 써서 예산처에 냅니다. 기획예산처가 이걸 오리고 붙여서 내년 예산 초안을 만듭니다. ‘초안’에 장애인 권리보장 예산이 많이 반영됐다면 제 가설이 맞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타이밍은 11월 하순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초안'을 보고 늘리고 뺄 건 없는지 검토합니다. 여야가 검토 결과를 치열하게 다투어서 합의한 결과, "이건 더 늘려야 한다"고 올린 항목들을 기획예산처에서 살펴봅니다.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단 1원도 늘릴 수 없거든요. 이때 기획예산처가 빨간펜 들고 ‘안 된다’고 깎아버리는 과정을 거쳐 ‘진짜_진짜_최최종’이 탄생합니다.
어쩌면 두 번째 타이밍이 더 중요합니다. 사례가 있거든요. 2022년 모처럼 여야가 합의해 장애인 권리보장 예산을 6,653억 늘리기로 했습니다. 전장연은 이 결정이 나자 시위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요구했던 1조 3,044억원 만큼은 아니지만 유의미하다고 본 겁니다. 그러나 당시 기재부는 국회가 늘린 6,653억 중 약 6,500억을 삭감하고 106억만 남겼습니다. 이때 쓴 빨간펜을 박홍근 장관이 쥐고 있습니다.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장연 요구가 반영되면 어떤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장애인 콜택시가 늘어 2~3시간씩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최중증 장애인의 활동지원 시간이 늘어납니다.
확인해보니 박홍근 장관은 전장연의 면담에 응한 첫 번째 예산장관입니다. 함께 지켜봐주세요. 그가 문제를 해결할지, 좋은 사람인 척도 못 하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