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하는 진짜 원인
고성능 민주주의 (1)

‘나라 망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포함돼 있습니다. 저출생, 저성장, 기후 위기, 경제적 양극화, 지방 소멸, 어려운 문제들뿐입니다. 누가 대신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 우리의 운명을 바꿔야 합니다. 친구들과 열심히 떠들어 보고, 혼자 나름대로 궁리해 본 결과, ‘고성능 민주주의’라는 해결책을 떠올렸습니다. 3주에 걸쳐 떠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한국이 소멸로 가게 된 원인은 제도 변경의 지연이다’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진짜 원인

‘나라 망한다’는 말의 구체적 의미는 ‘소멸’과 ‘삶의 질 하락’입니다. 망한다는 말을 고상하게 바꾸면 ‘소멸’입니다. 소멸의 증상은 저출생과 자살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 자살률은 아주 높습니다. ‘나라 망한다’는 말은 삶의 질 하락 또한 뜻합니다. 성장률이 떨어지니 벌이가 그대로거나 줍니다. 고령화로 지출은 늡니다. 덜 벌고 더 써야 하니 힘듭니다.
이 상황의 원인으로 지목된 유명한 용의자들이 있습니다. 저출생, 경제적 양극화, 기후 위기, 고령화 등입니다. 누구나 동의할 만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원인들의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 글의 주제입니다. 저출생 등은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제도 변경의 지연’이 낳은 결과입니다. 제도를 제때 변경해 막거나 완화할 수 있었던 인재입니다.
국민연금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금의 국민연금 시스템은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에 큰 지출을 요구합니다. 미래의 지출이 커지면 청년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불안이 커지면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고, 결혼 감소, 저출생으로 이어집니다. 그다음 결과가 소멸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20년 전 이미 예상했던 일입니다. 제도를 제때 못 바꾸면 이렇게 될 걸 알았습니다.
국민연금 제도 변경이 20년 지연되다

국민연금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월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넣어두면 은퇴한 후에 매달 월급처럼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줍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을 주식,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을 불립니다. 또, 계속 젊은 사람을 새로 가입시켜야 합니다. 먼저 가입한 사람에게 줄 돈을 나중에 가입한 사람에게 거둔 돈으로 채워주게끔 설계돼 있습니다.
따라서 젊은 세대가 계속 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돈을 받을 사람보다 낼 사람이 적어지면 내는 사람들은 과중한 부담을 져야 합니다. 자식이 10명일 때보다 한 명일 때 부모님 부양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상황을 예측한 참여정부는 2007년 제도 변경을 시도합니다. 가입자가 나중에 받을 돈(연금)은 줄이고, 지금 내는 돈(보험료)은 올리는 방향으로요.
그러나 변경에 실패합니다. 여론의 반대가 컸습니다. 월급의 9%인 보험료를 12.9%까지 높이려고 했지만 실패합니다. 18년이 지난 올해 3월에서야 13%가 됐습니다. 그나마 받는 돈은 조금 줄였지만, 그날 이후 올해 3월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정부가 제도 변경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래 세대의 부담은 점점 커져 ‘소멸’을 가속했습니다.
제도 변경의 지연 = 저성능 민주주의

국민연금은 한 가지 사례일 뿐입니다. 저는 ‘소멸’과 ‘삶의 질 하락’의 원인이 되는 문제들 대부분 ‘제도 변경의 지연’이 중요한 배후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 쓰레기 매립지 포화, 수도권 과밀화 문제, 갑자기 닥친 것보다 최소한 전문가 집단에서는 내다본 것이 많았습니다. 적기에 대응했다면 예방하거나 문제를 줄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제도 변경의 지연’을 피하지 못했을까요? 국민연금 제도 개혁 실패의 역사에 힌트가 있습니다. 정치인의 문제와 국민의 문제가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국민이 더 많은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개편을 이끌어야 할 정치인은 ‘돈 더 내셔야 해요’라고 말하길 꺼립니다. 많은 국민이 그 말을 싫어하니까요. 어려운 문제를 미뤄서 다 같이 위기에 빠지는 불행한 담합입니다.
저는 이렇게 필요한 제도 변경의 지연이 만연한 상태를 ‘저성능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의 성능이 나빠서 중요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래서 점점 소멸로 가는 상태입니다. 당장의 반발을 감수하고 국민을 설득하거나 이해관계를 조율할 정치세력이 부족한 상황, 그리고 국민이 공동체의 위기를 불러오는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아 합의가 어려운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럼 제가 생각하는 ‘고성능 민주주의’는 무엇일까요? 다음 주에 이어서 써볼게요!
열대야 안 온다고 좋아했는데, 어제부터 너무 덥네요…
여러분… 더위 조심하세요…
고성능 민주주의고 뭐고 더워서 정신이 혼미한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