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시청후감 (4) 영화 <햄넷>
엄중한 시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광복절 연휴가 단 하루 남았거든요. 이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실 텐데요. 도움이 될 만한 힌트를 준비했습니다. 황홀한 기분으로 연휴를 닫을 수 있는 영화 <햄넷>입니다.
최악의 남편

영화 <햄넷>의 주인공 아그네스에게는 ‘개차반’ 같은 남편 윌이 있습니다. 둘은 영국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결혼했고, 세 아이를 낳았습니다. 착실히 아이들 키우며 살면 될 것 같은데 윌은 그러질 못합니다. 아그네스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합니다. 그러나 가업인 가죽 장갑 공방에서도 적응을 못 하고, 런던에 갈 생각뿐입니다. 런던에서 희곡을 쓰고, 연극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뿐인 이 남자는 사실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입니다.
시든 꽃처럼 죽어가는 윌을 보다 못한 아그네스는 윌을 런던으로 보냅니다. 아그네스가 고향에서 독박육아를 하는 동안 윌은 승승장구합니다. 당연하죠. 그는 셰익스피어니까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희극, 비극을 연달아 내놓으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윌은 가족을 런던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아그네스는 완강히 거절합니다. 윌에게 글이 신인 것처럼, 아그네스에게는 숲이 신입니다. 숲을 떠날 수 없는 아그네스와 문명의 중심에서만 살 수 있는 윌의 숙명은 충돌합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아들 햄넷의 죽음으로 폭발합니다. 어린 나이에 병으로 아들 햄넷이 죽게 됩니다. 비보를 듣고 윌은 런던에서 달려오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합니다.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윌은 목숨처럼 아끼는 아들을 잃고 절망의 심연에 빠져 있는 아그네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 근데, 빨리 런던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공연 준비를 마무리해야 하거든.”
아직 장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그네스 마음속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사정

‘같은 물을 마시고도 뱀은 독을 만들고, 벌은 꿀을 만든다.’ 한때 제가 좋아했던 문장입니다. 이 말을 알려준 선생님은 자신이 젊은 시절 숭배했던 문장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압니다. 20대의 저는 뱀이 될지, 벌이 될지는 오직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많다, 어쩌면 내가 뱀인지, 벌인지 이미 숙명처럼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윌이 햄넷의 장례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런던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던 그 순간, 자신의 가슴을 칼로 후벼 파서 숙명을 꺼내 내다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인류 최고의 희곡 작가, 문학의 신으로 태어난 윌에게 글을 쓰고 극을 만드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숙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마감을 앞둔 상황에서 아들의 장례를 끝까지 치르고 가족 곁에 머물 수 없습니다. 윌이 아그네스를, 햄넷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관계없이 숙명에 눌려 지워진 선택지일 뿐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숙명이 삶을 비극으로 인도할 때, 윌의 선택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숙명에 순응해) 사는(to be) 것입니다. 이때 ‘도리를 다하며 사는 길’은 없습니다. 숙명을 받들어 가족을 외면하고 런던에 가는 삶(being)입니다. 다른 하나는 죽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때 윌이 정말로 죽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자신을 견디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을 테니까요.
햄넷의 클라이맥스

<햄넷>의 훌륭한 점은 숙명이 충돌해 파국으로 치달았을 때, 두 사람이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하나 알려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런던에 돌아간 윌은 아들의 이름을 본딴 비극 <햄릿>을 써서 무대에 올립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아그네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감히, 누구 이름으로 희곡을 만들어? 윌의 머리털을 다 뽑아버릴 기세로 아그네스는 런던으로, 극장으로 찾아갑니다.
극장에서 아그네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는지는 생략합니다. 직접 보셨으면 하거든요. 중요한 건 연극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들, 인물들의 대사, 그리고 관객들의 어떤 행동이 윌에 대한 마지막 끈까지 끊어버렸던 아그네스를 위로하고 미소 짓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윌이 개차반으로 살 수밖에 없는 건 문학 때문이지만, 아들을 잃은 아그네스의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다시 붙여낸 것도 문학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깨달음은 절망적입니다. 그 숙명은 인생을 뾰족하게 살게끔 하기 때문에, 아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을 때가 많아서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화 <햄넷>에 따르면 끈질기게 살아남고,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쩌면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윌이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아그네스의 미소를 보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클라이맥스 장면이 정말 좋습니다. 웨이브에서 2,500원에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햄넷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있다면, 어떻게 보셨는지 댓글에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