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예산이 늘어났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정치 (5)
이 편지 기억나세요?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전장연을 강하게 비판하고, 직후에 전장연과 박 장관이 만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소개하면서 제가 장애인 권리 예산을 반영하기 위한 ‘약속대련’일지도 모른다고 희망 섞인 궁예를 했었는데요. 기다렸던 정부 예산안 초안이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박홍근 장관이 예산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구안 100% 반영은 아니고요

전장연이 요구해 온 ‘장애인 권리보장 예산’은 묶음입니다. 장애인 이동권뿐만 아니라 교육, 일자리 등 여러 사안이 묶여 있습니다. 총 약 1조 원 규모입니다. 아쉽게도 2027년 예산안에 이 중 대부분은 반영이 안 됐습니다. 그렇지만 늘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다가 이례적으로 두 가지 요구가 반영됐습니다. 하나는 장애인연금, 다른 하나는 장애인 콜택시(이하 ‘장콜’)입니다.
국토부는 2027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장콜 ‘운영비’를 440억 늘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장콜’의 문제는 차가 부족해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인데요. 사실은 ‘차량(car)’이 부족한 건 아니고, 운전할 ‘사람’, 사람을 고용할 인건비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운전원 인건비를 늘려달라는 것이 전장연의 오랜 요구였는데요. 이걸 반영한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라고 말한 이유는 사실 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찾아보니 정부의 기존 입장은 ‘장콜은 서울시, 경기도 같은 지방정부 사업이니까 인건비는 우리가 못 줘! 대신, 기름값 같은 건 줄게’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인건비로 쓸 수 있게끔 해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기획예산처와 직접 대화한 전장연이 ‘인건비 늘려줘서 고맙다!’고 환영 논평을 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귀하가 마침 국토부 출입하는 기자라면 국토부에 한 번 물어봐 주세요. 내년엔 ‘장콜 운영비’를 ‘인건비’로 써서 장콜 운행 대수 늘어나게 해주는 거 맞냐고요.)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이냐면

‘장콜’에 대한 최신 사례를 하나 소개합니다. 어제, 그제 계뿌클 팀은 용산에서 열린 서울공익활동박람회에 참여했습니다. 이틀간 부스를 운영했어요. 가을 정복 활동에 오시라고 꼬시는 목적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500분 정도 다녀가셨습니다. 즉, 500명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계뿌클을 홍보했다는 뜻입니다. 많은 분이 반겨주셔서 무척 감사했지만, 토요일 오후 4시쯤 됐을 때는 ‘나… 좀 집에 가고 싶을지도…?^^’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습니다.
부스 운영 종료 시간은 5시, 정리 마친 시간은 5시 30분, 다른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수빈 님과 근처 카페에 갔습니다. 장콜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관대한 박수빈은 ‘먼저 가도 된다’고 했지만, 아, 어떻게 또 오늘 같이 함께 고생한 날에 치사하게 먼저 갈 수가 있겠습니까? 영혼이 가출한 상태로 둘이 마주 앉아 AI에 대한 공포, 연예인 얘기, 고등학교 때 친구 이야기까지 나누기를 꼬박 2시간, 7시 반에 장콜이 도착했습니다. 호출한 시간부터 따지면 아마 세 시간 만이었을 겁니다.
물론, 친구와의 2시간 대화 너무 즐겁죠. 긴 장콜 대기 시간이 박수빈과 저의 우정에 기여한 바가 꽤 크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선택권 없이 2~3시간을, 아무리 피곤할 때도 기다리는 게 ‘일상’인 건 사회생활에 치명적 제약입니다. 전장연 분석에 따르면 증액된 예산이 최종 통과되면 지금보다 1.5배 정도 차량 가동 시간이 늡니다. 대기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남은 두 개의 관문

물론, 아직 첩첩산중입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아있는 관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회’를 잘 통과하는 것입니다. 국회의 핵심 권한은 정부가 예산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깎는 것입니다. 국회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여쭤보니, 이론적으로야 ‘장콜’ 예산도 깎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쟁점이 크게 되는 예산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대로 최종 확정되는 것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설명해 줬습니다.
두 번째 관문은 ‘운영비를 인건비로 쓰게 해줄 것인가’입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이유는 두 개입니다. 전장연이 ‘인건비 땡큐!’ 논평을 낸 점, 두 번째는 운전원 인건비가 아니면 440억이나 갑자기 늘려서 쓸 용처가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긴장을 풀지 않고 끝까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글을 쓰고 모순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산이 꼭 늘었으면, 한편 박홍근 장관이 나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줬으면 하는 생각도 사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장콜’ 예산이 증액된 걸 보니 정말 기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이대로 내년 예산이 확정될 수 있도록 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부스 치우고 바로 각자 집에 가고 싶거든요.
아 근데 부스 열고 사람들한테 까부는 게 또 재미있긴 한
이대호 드림.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