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왕의 첫 본선 진출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는 그에게 미안한 대답을 들려줬습니다. “지수님, 죄송해요. 아무리 지수님이라도 제가 선거 운동을 도울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부탁을 거절한 속마음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현장 모습

더불어민주당은 요즘 새로운 당대표를 뽑는 선거에 한창입니다. 후보는 세 명입니다. 이재명 전 대표, 김두관 전 국회의원,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친구 도전왕 김지수입니다. 지수님이 출마를 결심하고 제게 도움을 청했습는데 사양했습니다. 비영리단체 공동대표자로서 정당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조직에 폐가 될 수 있고, 계뿌클 일만으로도 사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다 말하지 않은 속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지수님의 출마가 반갑지 않았습니다. 처음 당대표 선거 출마를 고민한다고 제게 이야기했을 때부터 안 했으면 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돈입니다. 당대표 후보로 등록하려면 8,000만 원을 내야 합니다. 본선 진출을 못 하면 등록비를 내고 1주일 뒤에 상황이 종료되는데, 그렇게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운 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제 의견을 전혀 안 들어준 것 같아서였습니다. 지수님은 2020년부터 모든 공직, 당직 선거에 도전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세 번, 최고위원 선거, 이번 당대표 선거까지 5회입니다. 시험이 학생을 성장시키는 것처럼 선거도 정치인을 성장시킵니다. 그렇지만 지금 지수님에게 필요한 건 시험보단 자율학습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말해왔는데 출마하겠다고 하니, 괜히 미워보였습니다.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연애 상담 실컷 해줬는데, “생각해 봤는데 다시 만나기로 했어”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랄까요?

김지수의 첫 본선 진출

가끔 얄미운 친구 지수님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본선 진출’을 김지수 후보가 해냈기 때문입니다. 지난 도전들 모두 예비후보로 레이스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도전한 가장 큰 선거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합니다. 당대표 선거는 4명 이상이 후보로 등록하면 예선을 치러 3명으로 줄입니다. 이번에는 단 세 명만 후보로 등록해 바로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본선에 진출한 김지수에게는 정치 인생 어느 때보다 많은 발언권이 주어졌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MBC 백분토론 등 주요 매체가 연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에 빠짐없이 출연했고, 전국 팔도에서 열린 순회경선 무대에서 연설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속 좁았던 마음은 흔적 없이 증발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응원하며 지켜보게 됐습니다.

김지수 후보의 선거 슬로건은 “차별 없는 기회! 미래가 온다!”입니다. 김지수는 ‘미래세대에 권한을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반복합니다. 좋은데 너무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는 것 아닌지 걱정도 했습니다. 주목을 끌 만한 새로운 이야기, 참신한 표현, 풍부한 근거를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혼자 꿍얼꿍얼 논평하며 김지수와 친구들의 경기를 지켜봤는데요.

고맙습니다

김지수와 친구들

이제는 고맙습니다. 기후변화 대응, 국민연금 고갈, 수도권 집중화 문제 등 여러 사회 현안이 우리 세대의 부담과 밀접합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됩니다. 바로잡을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독점하는 권한을 다른 세대에 배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평과 비판을 해도 달래려 할 뿐 바뀌지 않습니다.

상황을 바로잡는 방법은 권한을 배분하는 경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더라도,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더라도 말입니다.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어 안 그래도 불리한 우리 세대가 큰 위험과 비용까지 치러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니 불합리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게 만들어놓고 무슨 도전까지 하라고?’라는 생각이 들지만, 유일한 방법은 그 좁은 길뿐입니다.

도전왕 김지수는 기꺼이 그 좁은 길로 싱글벙글 웃으면서 달려갑니다. 허무맹랑한 사람으로 비칠 위험, 낙선해도 돌려받을 수 없는 4,000만 원(당에서 50% 깎아줬다고 합니다)의 돈, 도와주는 친구들에게 지는 마음의 빚을 기꺼이 짊어지느라 너무 고될 텐데도 해맑게 달립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은 지금, 단 한 가지만을 주장합니다.

이 공동체의 미래를 올바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건 미래를 살아갈 우리 자신뿐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김지수 후보의 선거가 끝났습니다. 최종 득표율 2.48%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제주에서 열린 첫 경선 투표율 1.29%와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결과입니다. 네거티브의 유혹, 권력에 아부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미래세대 이야기만으로 레이스를 완주한 김지수 후보님과 친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


도전왕 김지수의 지난 이야기